경기침체로 사람들의 씀씀이가 위축되고 신용카드 사용량이 줄면서 카드사마다 수익이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2.5~2.6%였던 수수료율이 2% 아래로 떨어지면서 신용판매 부문에서의 수익이 절반으로 감소했다. 지난 10여 년간 고속 성장을 지속했던 현대카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기 불황과 규제 강화는 현대카드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현대카드는 수익 감소와 사세 위축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하는 일부터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하고 있는 일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하면 현재 처한 상황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 보일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회계다. 기업 활동은 결국 돈을 어디에 쓰고 어디서 버는지로 정의된다. 즉 기업의 정체성은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현대카드는 회계에 돋보기를 들이대 면밀히 분석하고 그것을 통해 하고 있는 업의 본질을 파악하기로 했다. 여기서 TVA(Total View Accounting)가 시작됐다.



실체를 숨겨왔던 기존의 회계


원래 회계는 기업에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얼마나 나가서, 결론적으로 얼마가 남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과정이며 결과다. 이 목적대로라면 회계 하나로 기업이 현재 어떤 활동에 돈을 써서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명쾌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카드가 보기에 기존의 회계 기준으로는 기업이 어느 부문에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지, 어떻게 수익을 내고 있는지 알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항목이 지나치게 잘게 나눠지고 세분화돼서 알고 싶은 항목을 딱 부러지게 파악할 수 없었다.


예컨대 ‘판매비’라고 하면 그 정의상 ‘기업에서 만드는 상품이나 제공하는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해 쓴 비용’을 나타내야 한다. 하지만 만약 판매를 담당하는 임원에게 “지금 판매비로 얼마를 쓰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아마도 회계 항목상 판매비라고 기재돼 있는 비용만 이야기할 것이다. 진정한 판매비를 파악하려면 판매활동을 하는 인력에게 지급되는 비용, 이들이 사용하는 사무실의 임대차비 등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즉 판매를 담당하는 임원 본인은 물론 그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월급과 이들이 머물며 일하는 사무실을 임대하기 위한 비용 등도 모두 판매활동을 위해 지출된 비용이므로 넓은 범위에서 판매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회계 항목상 판매비에는 이런 비용들이 담겨 있지 않다. 아마도 임직원에게 지급되는 비용은 인건비에, 사무실 임대비용은 일반경비 항목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판매비를 확인하려면 다른 항목으로 들어가 있으나 실제로는 판매활동을 위해 사용된 비용들을 끄집어내서 한데 모아야 한다.



고정관념 탈피의 산물, TVA


현재 회계 기준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비용을 파악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현대카드는 자체적인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이것이 TVA의 발단이다. 먼저 전통적인 방식의 회계 기준을 무시하고 다양한 항목들에 흩어져 있는 비용들을 그 실체에 맞게 새로운 기준으로 묶어보기로 했다. 현대카드만의 새로운 회계장부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 결과물은 신통치 않았다. 그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항목별 비용들을 단순 합산한 것에 불과했다. 현대카드의 사업 내용에 맞게 인건비, 마케팅비, 영업비, 상품・서비스비, 임대차비, 관리비로 큼직하게 나눈 것까지는 좋았으나 하나로 묶으면 좋을 만한 비용들을 이 항목 저 항목에서 찾아와 하나로 합쳤을 뿐 어떤 시사점도 얻을 수 없는 결과였다.


몇 달간 전체 본부가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가장 큰 난관은 고정관념의 탈피였다. 기존 회계에 익숙한 본부장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비용을 재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본부장들은 여러 비용을 이렇게도 모아보고 저렇게도 모아보면서 목적과 의도에 부합하는 기준을 새로 만들어내야 했다. 규칙적으로 모여 스터디를 통해 실패 사례와 성공 사례를 공유하며 그렇게 TVA가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현대카드만의 새로운 회계


TVA가 전통적 방식의 회계 기준과 가장 다른 점은 ‘중복 계산(double accounting)'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방식의 회계에서는 동일한 거래를 이중으로 계상하는 더블 카운팅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하지만 TVA에서는 실질적으로 사용된 비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핵심 목적으로 하므로 그 실체에 맞게 더블 또는 트리플 카운팅을 허용한다. 


예를 들어 제품 판매와 관련된 어떤 업무를 외부업체에 아웃소싱 했을 때 전통적 방식의 회계기준에 따르면 그 업체에 지급한 비용은 ’업무처리비‘라는 항목에 들어간다. 이 비용은 하나의 항목으로 이미 계산됐으므로 다른 항목으로 다시 계산될 수 없다. 하지만 TVA에서는 업체 지급 비용을 판매활동을 위한 비용으로 보고 마케팅비에 넣을 수도 있고, 외부 인력에게 지급된 비용으로 보고 인건비에 넣을 수도 있다. 즉 목적과 의도에 맞게 이중으로 계산될 수 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브랜드 부문 비용이다. 브랜드 부문 비용은 현대카드가 만드는 상품과 제공하는 서비스, 그와 연관된 활동 등을 알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모든 항목을 포괄한다. 대표적인 예가 광고다. 전통적인 회계 기준에서 브랜드 비용에는 광고선전비만 포함된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이보다 넓은 범위에서 파악해야 진정한 의미의 브랜드 비용을 계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광고선전비는 물론 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인건비, 아웃소싱업체에 지급하는 용역료, 슈퍼콘서트 장소를 대여하기 위해 쓴 임대차비 등을 모두 브랜드 비용에 포함시켰다. 이런 비용들도 현대카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본 것이다. 이를 위해 회계 항목들에 분산돼 있는 관련 비용들을 끄집어내서 한데 모았다. 그리고 모인 비용들을 다양한 기준으로 재편성했다.


이렇게 해서 확립된 기준 중에 대표적인 것이 생계형/이미지형, 대칭적/비대칭적, 광고/비광고 등이다. ‘생계형’은 상품 판매와 직접 연결되는 비용, ‘이미지형’은 상품 판매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지만 현대카드만의 고유한 개성을 홍보하기 위한 비용을 말한다. 대칭/비대칭의 구분은 현대카드만 하고 있느냐, 다른 카드사도 하고 있느냐를 가르는 기준이다. ‘광고’와 ‘비광고’는 말 그대로 광고와 광고가 아닌 그 밖의 활동을 구분한다. 이 같은 기준들은 전통적인 회계 기준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것으로, 현대카드가 스스로 하는 활동을 심도 있게 관찰하고 고민한 끝에 비용의 진정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만든 결과물이다.



TVA, 경영전략의 성공사례를 만들다


TVA를 통해 각종 비용을 꼼꼼하게 분석한 다음, 현대카드는 분석 내용을 토대로 경영 전략을 기존과 180도 달리 잡았다. 이제까지는 현대카드 고객이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비슷한 혜택을 제공했지만 TVA를 통해 손익구조를 면밀히 분석한 후에는 월 카드사용금액이 50만 원에 못 미치는 고객에게는 아무런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대신 월 카드사용금액이 50만 원을 넘으면 이전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월 카드사용금액이 100만 원, 200만 원을 넘길 때마다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대폭 늘어나도록 만들어 수익기여도가 높은 고객에게 확실히 보상하는 구조로 완전히 뜯어고쳤다.


고객별 서비스 내용을 차별화한 대표적인 또 하나의 사례는 콜센터다. 이제까지는 카드를 많이 사용하든 그렇지 않든 현대카드 고객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TVA 도입 후에는 카드사용금액이 많은 고객을 전담하는 콜센터를 별도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즉 카드사용금액이 많은 고객이 전화를 걸면 이들만 상대하는 콜센터로 연결되도록 해서 대기시간을 줄이고 보다 구체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카드사용금액이 적은 고객일수록 질문이 간단하고 원하는 답만 신속하게 듣기를 원하는 반면, 카드사용금액이 많은 고객은 질문이 복잡하고 좀 더 자세하게 듣는 편을 선호한다는 분석이 반영된 조치다. 


이와 함께 우수 고객을 유치한 설계사들에게 인센티브를 많이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해 고객 모집에 들어가는 비용도 대폭 손질했다. 고객을 모집하기만 하면 무조건 일정 금액을 지급하던 기존 구조에서 탈피해 신규 고객이 장기간 많이 쓸수록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늘렸다. 모집 단계에서부터 수익기여도가 높은 고객 위주로 유치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사업 전체적으로 대대적인 혁신을 추구한 결과 2014년 3분기 현대카드의 당기순이익은 68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했다. 2014년 누적 기준으로는 60%가 넘는 증가세다. 현대카드가 자체적인 회계 기준을 도입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업의 본질을 파악해 핵심가치를 이끌어낸 정태영 대표의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과 기존 관행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관점을 들이댄 비용의 재구성, 서로 질문하며 최고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 내부의 팀워크와 도전하는 문화를 꼽을 수 있다.





Writer. 최한나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69호 케이스 스터디 기사를 토대로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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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융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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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모니 2015.02.05 2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에 나오는 글에서 기존회계라는건 투자자를 위한 재무회계를 말하는것 같고 새로운 뷰는 관리회계를 말하는군요. 회계가 출납을 의미한다는건 진짜 구식개념인거고 재무회계에서 회계는 신뢰성과 가치평가가 중요하며 관리회계는 경영의사결정을 위한 다양한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합니다.

    • 금융공학 2015.02.06 1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하모니님. TVA는 경영의 실태 파악과 의사결정을 위해 현대카드가 새로이 도입한 회계방식으로써 기존의 전통적인 회계에서는 엄격히 금지해왔던 중복계산(double counting)을 허용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목적과 의도에 부합하는 회계 기준을 새로이 만들어 경영의 총체적인(total view) 파악이 가능토록 한 것입니다. 따라서 TVA는 단순히 재무회계와 관리회계의 구분을 넘어, 현대카드가 고정관념을 탈피한 새로운 방식의 회계기준을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