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학을 말하다' (45건)

 

“○○는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이자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놀라운 발명 중 하나이다”


-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


“○○의 놀라운 힘을 믿어라”


-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 -



빈칸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단어는 바로 ‘복리’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투자 기간이 길수록 자금의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복리의 어마어마한 효과를 가리켜 인간의 가장 놀라운 발명이라며 극찬했고, 13년간의 펀드 운용으로 2700%가 넘는 수익률을 거둔 월가의 피터 린치 또한 복리의 힘을 누구보다 강조해온 인물입니다.

금융 상품 설명을 들을 때나 혹은 어떤 효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을 말할 때 우리는 ‘복리’라는 표현을 접해왔고 그 효과에 크나큰 기대를 걸게 됩니다. 도대체 복리가 뭐길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리도 칭송 받는 것일까요? 시간활용의 마술이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에 관한 유래를 살펴보면 의문이 조금은 풀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맨해튼의 ‘돌 섬’을 ‘황금 섬’으로 만든 복리의 힘

미국 뉴욕시 중심부에 있는 섬이자 금융 · 상업의 중심지인 맨해튼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600년대 유럽 강대국들이 식민지를 확대해 나가던 중,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이 맨해튼에 진출하게 되자 1626년 네덜란드가 맨해튼 터전의 주인인 인디언들로부터 땅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맨해튼’은 인디언의 언어로 ‘돌섬’이라는 의미인데, 그에 걸맞게 실제로 돌 값 정도의 푼돈에 소유권이 넘겨졌다고 합니다. 그 금액이 겨우 60길더(24달러), 원화로는 환율이 1,050원일 경우 25,500원입니다. 이마저도 현금이 아닌 장신구와 구슬로 거래를 했다고 하니, 당시 인디언들이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1954년 뮤추얼 펀드사인 ‘템플턴그로스펀드’를 설립 후 1992년 회사를 매각할 때까지 매년 연평균 14.5%라는 수익률을 달성한 세기의 투자자 존 템플턴은 타계 전, 인디언들이 ‘남는 장사’를 했다는 주장을 펼쳤죠. 만약 인디언들이 맨해튼을 넘긴 대가로 받은 장신구와 구슬을 현금화하여 24달러를 연 8%의 복리로 예금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렇다는 것인데요. 2006년도 즉, 380년이 지난 시점을 기준으로, 맨해튼을 두 번 사고 남은 돈으로는 LA까지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24달러를 380년간 8% 복리로 계산하면 그 금액은 약 120조 달러, 120조 달러를 1,050원 환율을 고려하여 한화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약 126,000,000,000,000,000원 (12경 6,000조)

우리는 학창 시절 수를 배울 때 ‘경’이라는 단위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개념으로 알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억’을 넘어선 단위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죠. ‘이 엄청난 숫자가 단순히 380년의 시간으로 인해 불어난 금액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복리가 아닌 원금에만 이자를 지급하는 단리 방식으로 계산하면 금액은 고작 9,771달러, 즉 1천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에 불과하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매달 투자하는 내 돈, 복리와 단리로 얼마나 모이나?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의 성공비결도 장기투자를 통한 복리효과의 극대화에 있었는데요. 그는 40년 넘게 투자를 하면서 연평균 23%의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워렌 버핏은 이와 같은 복리효과를 눈 덮인 산꼭대기에서부터 구르기 시작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지는 눈덩이에 비유하며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로 칭했습니다. 동일한 금액, 동일한 시간이라 해도 그것이 복리인지 아닌지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인데, 복리 계산식을 활용하면 보다 이해가 쉽습니다.


복리 계산식: FV = PV(1+R)^N

단리 계산식: FV = PV(1+R x N)

( FV : 미래가치 , PV : 현재가치 , R : 이자율 , N : 저축 기간 )



이 계산식을 응용하여 복리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그 엄청난 차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적금,  만기에 얼마나 불어나 있을까?

원
%
년
이자계산 방식

예치금액-

일반과세

세후이자-

만기지급액-

비과세

세후이자-

만기지급액-

일반의 경우 이자금액의 15.4%가 원천징수 됩니다.



복리의 마법으로 누리는 행복한 재테크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우리들이 380년간 자금을 운용할 수도 없고, 와 닿지 않을 정도의 큰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확실한 건 시중 금리가 이미 물가상승률 보다 낮다는 것입니다. 오르지 않는 연봉과 매년 오르고 있는 물가는 계속 역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죠.


결혼, 주택, 출산, 교육, 노후 등 모든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만, 지금 버는 돈으로 현재를 살기에도 빠듯한 대다수의 경우 저축 비율을 늘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금액과 이율이 적은 상황에서 복리라는 금융기법이 하나의 선택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중요도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결과 역시 미리 예상하고 받아들여야겠죠.


1억 원이라는 커피 한잔의 컵에 ‘복리 설탕’ 한 스푼을 넣는다면 우린 조금 더 현실적인 돈 모으기가 가능합니다. 한달 15만 원을 4%, 30년간 복리로 계산하면 원금 5,400만 원에 이자 5,329만 원이 더해져 10,909만 원이 모아집니다. 금액이 높아지거나 이자율이 높아지면 기간이 당겨지는 것은 아주 당연하겠지만 여기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높은 이자율은 위험부담(Risk)을 동반한다는 점, 필요 시 중도자금 회수가 비교적 어렵다는 점 등이 있겠죠.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재원으로 무한한 행복을 누리며 살기 원한다면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인생과 그에 따른 자금 계획은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가는 것이고 그것을 하나하나 달성하면서 느끼는 성취감도 오롯이 나의 몫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확실하게 만드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나의 현재입니다. 지금까지 금액이 너무 적어서 혹은 기간이 너무 길어서 지레 포기했다면, 이제부터라도 행복의 복리 효과를 가져다 줄 금융지식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건 어떨까요?

 

 


 

 Writer. 이세진
포도재무설계 수석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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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렛은 프랑스어로 ‘작은 바퀴’란 뜻을 가진 카지노 게임입니다. 숫자가 적힌 바퀴를 돌린 후 그 반대 방향으로 구슬을 굴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구슬이 멎는 숫자에 따라 건 돈을 잃거나 몇 배를 따는 도박입니다. 예컨대 빨강과 검정 중 검정에 걸었는데 구슬이 검정에 표시된 숫자에서 멎는다면 건 돈의 두 배를 받게 되죠. 만약 특정 숫자에 걸었다가 이기면 건 돈의 36배를 받고, 35배의 이익이 남습니다. 가장 ‘소심한’ 배팅은 짝수나 홀수에, 또는 검정과 빨강 중 거는 것입니다. 당첨확률이 대략 50%는 되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소심하게 배팅하는 사람만 존재한다면 카지노는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0’과 ‘00’입니다. 규정상 짝수나 홀수, 검은색이나 빨간색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0과 00 중 하나에라도 구슬이 들어가면, 그 숫자에 돈을 건 사람은 36배로 돌려받지만 나머지 칩들은 카지노 측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위험추구의 대명사인 카지노 게임과 위험회피의 간판 격인 보험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카지노와 보험회사 모두 ‘대수(大數)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에 바탕을 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다다익선(多多益善) 논리로 탄생한 보험


특정 이벤트의 발생 확률이, 적은 횟수로 측정했을 땐 뚜렷이 나타나지 않지만 측정 횟수를 크게 늘리면 뚜렷이 발생하는 현상을 대수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룰렛을 38번 돌렸을 때 0이나 00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365일 밤낮없이 돌리다 보면 이론적 확률인 1/38의 가능성으로 0이나 00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보험업 역시 대수의 법칙 없이는 존재하기 어려운 산업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년 동안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아주 많은 사람의 사례를 모아놓고 보면 전체적인 교통사고 건수나 피해 액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후자의 상황에서 보험회사는 어느 정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수준으로 보험료를 책정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는 사고가 난 보험가입자에게 받은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때도 있지만, 사고 없는 가입자가 더 많을 수 있기에 손해가 희석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논리라면 보험가입자가 많은 큰 보험회사일수록 사업을 유리하게 영위할 수 있는데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면 더 안정적으로 지출금액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신생 보험회사는 보험가입자를 어느 정도 확보할 때까지 고전을 면치 못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혹시라도 독과점이 생긴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죠? 이에 정부는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와 같은 특정 기관을 통해 사망, 질병, 사고 등의 통계를 수집하고 보험회사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 대수의 법칙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개념이 위험 분산(Risk Pooling)입니다. 위험 분산이란 수많은 개별적 위험을 한 곳에 모아 집단 전체의 위험을 줄이는 행위입니다. 다시 보험의 예로 돌아가면,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개인들이 보험회사에 주는 이익(+)이나 손해(-)는 천차만별이지만, 개인을 많이 모으면 들쭉날쭉한 이익과 손해가 상쇄되어 보험회사의 손익이 안정화되는 것이죠.

 

대형 연예기획사의 안정적 성장도 위험 분산 덕분입니다. 소속 연예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예기획사의 수입은 꾸준히 늘어나게 됩니다. 연예인 개인의 수입은 불안정할지 몰라도 대형 연예기획사의 수입은 그렇지 않죠. 더구나 유명 연예인을 통해 거둔 수입 덕분에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많은 신인에게 동시 투자할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위험을 분산하는 셈입니다.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지향하는 바도 결국은 가맹점 수를 늘려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입니다. 간혹 프랜차이즈 본사가 너무 좁은 지역 안에 여러 개의 지점을 열도록 하는 등 개별 점포의 수익은 고려하지 않는 듯한 일을 벌이기도 하는데요, 이런 일은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일이긴 하나 전체 수익과 가맹점 확대를 통한 위험 분산이 중요한 본사로서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맹점주는 첫 계약 단계에서 세부적인 조건들을 따져둬야 합니다.

 

 

금융위기, 대수의 법칙의 그림자  

 

위험 분산을 바탕으로 한 금융상품 역시 많습니다. 2008년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 주택 담보부채권(MBS∙Mortgage-Backed Securities)도 그 중 하나인데요, 주택 담보부채권이란 주로 미국 은행이 갖고 있는 수많은 주택담보대출(Mortgage)을 한데 모아 빚에 대한 증서인 채권(Securities)으로 만든 것을 뜻합니다. 주택 담보부채권을 매입하면 그 채권에 포함된 많은 주택담보대출 건으로부터 걷힌 이자를 나눠 받게 됩니다. 개별 주택담보대출은 돈을 빌린 개인 채무자가 중간에 더 이상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 채권자가 모든 위험을 떠맡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나 수많은 주택담보대출 건수를 한데 묶은 주택 담보부채권은 소수의 대출자가 이자지급 불능 사태에 빠지더라도 나머지 다수가 손실분을 상쇄해 큰 문제 없이 안정적으로 이자를 모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대수의 법칙에 근거한 위험 분산 기능이 금융 소비자의 과신을 불러일으킨 나머지 주택 담보부채권이 매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주택 담보부채권이 잘 팔리다 보니 은행들이 주택을 담보로 더 많은 대출을 하게 됐고, 사람들은 집을 사는 데 빚을 쉽게 얻게 돼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것입니다. 결국 부동산 거품은 꺼지고 대형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초래돼 세계 금융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메가펀드, 대수의 법칙의 빛이 될 수 있을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대수의 법칙에 근거한 위험 분산 기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한 예로 경제학자이자 헤지펀드 매니저인 앤드류 로(Andrew Lo)는 2012년 이른바 ‘메가펀드(Mega-sized Fund)’의 개념을 제안했는데요, 이 또한 대수의 법칙 이론에 근거합니다. 작은 펀드가 여러 개 있으면 실패 프로젝트에만 펀드가 투입돼 전반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지만,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다룰 수 있는 메가펀드는 성공 프로젝트가 확실하게 편입되어, 실패 프로젝트의 손실을 보완하고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앤드류 로는 주택 담보부채권과 비슷한 연구 담보부채권(Research-Backed Obligations)을 제안했는데요, 대규모의 자본을 모아 초기 단계의 암 치료약 개발 여러 건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수백억 달러 정도의 규모가 돼야 여러 연구를 한꺼번에 지원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초 제안은 암 치료에 관한 것이었지만, 사실 이러한 발상은 위험 부담이 큰 연구 프로젝트나 벤처 지원 등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금융위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적으로 자본을 동원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겠지만, 한 번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이 아니라도 혁신적인 창업이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지향점이 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으니 말입니다.

 

 


 

 Writer. 민세진
동국대학교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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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대신 두유로 카페라떼 톨(tall) 사이즈 하나, 에스프레소에 샷 추가해서 더블샷으로 하나 주세요.” 커피 한잔을 주문할 때에도 저마다의 취향이 묻어납니다. 같은 회사, 같은 부서, 같은 직급의 두 손님이지만 한 명은 두유를 넣은 카페 라떼를 즐기고 다른 한 명은 더블샷을 넣은 쓴맛의 커피를 즐기는 손님입니다. 음료 구입시 손님의 주문 사항을 반영해주는 커스텀 메이드 서비스를 실시하는 스타벅스에서는 같은 음료를 주문해도 맛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뉴욕, 런던, 도쿄 등 전 세계의 스타벅스 어디에서나 이처럼 개성이 반영된 주문을 들을 수 있는데요, 규격화된 프랜차이즈 기업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소비자 집단’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만큼 소비자는 이제 하나의 군단이 아니라 개별적인 자아의 집합이 되고 있습니다.

 

 

 

 

강한 자아가 투영된 소비, ‘에고노믹스’

 

현대인들은 타인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자신을 주장합니다. 유행을 추종하는 집단적 소비 패턴이 강하게 나타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주관이 반영된 소비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유행하는 레깅스를 입는 대신 1873년 처음 출시됐던 리바이스 ‘501 청바지’를 고집하는 20대 대학생, 중년 여성들이 선호하는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 대신 심플한 실버 목걸이를 선택하는 50대 여성 등 대중적인 유행과 개성 추구가 공존하는 양상인데요. IT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소비자가 최신 스마트폰을 선호할 것 같지만, 통화와 문자 메시지 기능 위주의 알뜰폰이나 출시된 지 오래된 특정모델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처럼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몰개성 소비가 아닌 나의 만족이 우선인 ‘개성 소비 시대’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을 보면 고객 주문형 제품이나 맞춤 서비스 분야의 마케팅이 대세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아가 담긴 소비, 즉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지갑을 여는 소비를 ‘에고(Ego) 소비’라고 지칭합니다. 에고 소비가 글로벌 트렌드로 확산되면서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 탄생했는데요, ‘팝콘 리포트’ ‘미래생활사전’ 등 유명 저서를 집필한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페이스 팝콘(Faith Popcorn)은 이와 같은 개성주의적 트렌드를 ‘에고노믹스(Egonomics)’로 명명했습니다.

 

 

컨버스 운동화에 밍크코트? ‘믹스 앤 매치’ 소비

 

에고 소비가 강해지며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이 ‘믹스 앤 매치(mix & match) 소비입니다. 이는 기존 특정 가격대, 특정 수준에 포지셔닝된 상품을 일관되게 소비했던 것과는 달리,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과 서로 상반된 이미지의 브랜드를 나만의 기준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 고소득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값비싼 제품으로 갖춰 입으며, 최고급 럭셔리 자동차를 타고 명품 슈트와 고가의 구두, 가방과 시계를 착용하는 것이 당연했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소득 수준에 맞춰 알뜰하게 소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믹스&매치 소비’의 패턴은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데요. 500만 원짜리 명품 핸드백을 들고 있는 동시에 7만 원짜리 청바지를 입은 사람, 컨버스 운동화에 밍크코트를 걸친 사람 등으로 말이죠.

 

이러한 믹스&매치 소비 패턴은 소비자의 주관이 굉장히 분명하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며 높은 가치를 두는 제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저렴해도 무방한 제품에는 돈을 아낍니다. 그렇다고 특정 제품군에 두는 가치가 모두 동일한 것도 아닙니다. 개성과 자아에 따라 다양한 가격대와 이미지의 브랜드를 동일 제품군 안에서 소비합니다. 명품 핸드백을 든 여성의 옷장 안에 저렴한 핸드백이 많을 수도 있고, 30달러 청바지를 입기도 하지만, 300달러 이상의 고가 프리미엄 청바지를 착용하기도 합니다. 핸드백의 가격과 TPO(Time, Place, Occasion 시간 장소)가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그날 입은 옷의 스타일에 따라 다른 핸드백을 들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주관과 자아가 소비를 통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에고 소비의 또 다른 단면, ‘노 브랜드’ 현상

 

‘하이테크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지스 매케나(Regis McKenna)는 일찌감치 2000년 경영분야 잡지인 ‘비즈니스(Business) 2.0’과의 인터뷰에서 “브랜드가 죽었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 후 실제로 전 세계에는 ‘노(No) 브랜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이는 에고 소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굳이 유명 브랜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낼 필요성이 사라진 에고 소비가 곧 ‘노 브랜드’ 현상으로 연결된 것인데요.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다 못해 사랑하는 마니아 소비자들과 브랜드가 부각되지 않는 ‘노 브랜드’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는 노 브랜딩(No Branding) 전략을 펼치는 기업에 손을 들어주는 소비자가 생긴 것입니다. 에고 소비자는 ‘특정 브랜드=무엇’이라는 기업이 내세우는 브랜드 전략에 휩쓸리지 않고, 상품 본연의 기능 등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상품을 구매합니다.

 

‘노 브랜드’ 선호 현상으로 히트상품 반열에 오른 ‘브랜드’도 있습니다. 일본의 생활용품 브랜드인 ‘무지(無印良品 · MUJI)’는 생활용품, 의류, 가구, 식품 등 다양한 상품을 생산 및 유통하는 기업으로 제품의 로고를 없앤 노브랜딩 전략을 구사합니다. 상품의 품질과 서비스에 승부수를 던진 끝에 이를 알아준 소비자들에 힘입어 일본 외의 해외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머징 국가의 큰 손, 에고 소비 세대

 

이머징 국가에서도 에고 소비의 확산을 이끄는 새로운 세대가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데요, 중국의 ‘바링허우’, ‘주링허우’ 세대만 보더라도 중국의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소비 패턴을 보입니다. ‘바링허우(八零後)’는 중국이 1가구 1자녀 정책을 폈던 직후인 1980년대에 태어나 ‘소황제(샤오황디)’라고도 불리는 세대입니다. 대부분 외아들이나 외동딸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성장한 바링허우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지출한다는 점입니다. ‘주링허우(九零後)’ 세대는 중국이 개혁, 개방으로 일정 수준의 경제적 부를 이룬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로 제2기 소황제 세대라고 불립니다. 부모의 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풍족한 유아·아동기를 보낸 주링허우는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세대입니다. 베트남의 ‘비나발렛(Vinavalet: 베트남 신흥 부유층)’, 러시아의 ‘노브이 루스키(Novyi Russkiy: 새 러시아인이라는 의미의 러시아 신흥 부유층)’ 등의 소비 성향을 살펴봐도 개성 강한 에고노믹스의 단면이 발견되는데요, 이들은 자신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하는데 익숙하며 개인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지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에고노믹스 현상이 진화한 형태인 믹스 앤 매치 소비, 노 브랜드 현상 등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받으며 성장하는 세계 각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신이 의지에 따라 소비할 수 있는 연령대에 이르면, 에고 소비 패턴은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기업은 에고 소비에 대응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 수립이 필요할 것입니다.

 

 


 

 Writer. 이효정
비즈트렌드연구회·삼정KPM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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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융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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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우 2014.05.14 2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개성이 아닌 다양성이 널리 널리 퍼지길.

  2. 금융공학 2014.05.28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중국염성님.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블로그 담당자입니다.
    댓글로 남겨주신 내용은 당사 블로그 운영 정책에 따라 광고성 문구가 삽입된 댓글로 삭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3. 2014.12.23 14: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4. 반장 2015.03.16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5. 반장 2015.03.16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소비자들은 모호하거나 극히 한정된 선택지 앞에서 본인이 선호하는 바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명확하거나 추가적인 선택 안을 주면 기준점 효과, 대비 효과가 나타나 선택이 훨씬 수월해지는데요, 물건을 구매하는 것부터 형량을 구형하는 일까지.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두 효과의 메커니즘을 사례와 함께 알아봅니다.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족쇄, 앵커링


앵커(Anchor), 배를 정박시키는 데 쓰이는 닻을 말합니다. 바다를 지키는 해군이나 선원을 의미하기도 하죠. 이 앵커라는 말이 요즘 가장 '핫'한 학문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흔히 정박 효과 또는 기준점 효과로 불리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는 소비자가 가장 처음 접한 정보에 집착해 합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행동 경제학 용어입니다. 즉 소비자의 머릿속에 특정 가격을 미리 심어두면(닻을 내려두면) 소비자들은 객관적 요인보다 이 숫자를 기준 삼아 제품의 가격이 싼 지 비싼지를 판단하는 겁니다.

 

대형 마트에서 냉장고를 판매할 때 정상 가격 100만 원을 일부러 보이게 써놓고 그 위에 할인 가격 80만 원을 제시하는 식이 대표적입니다. 소비자들은 이 80만 원이 적정한 가격인지 아닌지 정확히 판단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20만 원을 아꼈다”며 횡재한 기분을 느끼는데요, 소비자가 냉장고 구매를 결정하는 기준점(Reference Point), 즉 닻이 닿은 부분이 100만 원에 형성됐기 때문이죠.

 

눈앞에 990원짜리 펜과 1,000원짜리 펜이 나란히 놓여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대다수 사람은 990원짜리 펜을 1,000원짜리 펜보다 훨씬 싼 제품이라고 인식합니다. 실제 가격 차이는 10원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심지어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만 5,000원짜리 제품과 1만 5,490원짜리 제품 중 어떤 상품이 더 저렴하냐”고 묻자 전자라고 대답한 사람보다 후자라고 대답한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990원과 1,000원’을 비교할 때와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은 뒷자리가 복잡한 숫자를 더 작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인간은 '선택의 대상'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비교하기 쉬운 대상'을 비교합니다. 이를 행동 경제학 용어로 대비 효과(Contrast Effect)라고 합니다.

 

 

 

 

인간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존재?


사람들은 왜 이런 판단 오류를 일으킬까요? 답을 얻으려면 우선 행동 경제학이 어떤 학문인지부터 파악해야 하는데요, 행동 경제학은 경제학과 심리학이 결합한 일종의 퓨전 학문으로 비합리성을 지닌 인간의 경제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정통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컴퓨터나 계산기처럼 일정한 논리(이성)에 근거해 항상 합리적인 결정만을 내린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기준점 효과에서 보듯 인간은 결코 합리적인 판단만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죠.

 

인간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행동 경제학 용어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입니다. 심리학 연구 결과 인간은 주식 투자로 100만 원을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었을 때 훨씬 큰 괴로움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면 100만 원을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과 잃었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 똑같아야 하지만 사실상 비합리성을 지닌 인간은 기쁨보다 괴로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

 

행동 경제학의 창시자는 이스라엘 출신 유대계 미국인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으로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입니다. 대다수 경제학자가 인간을 이성적인 판단을 지닌 주체,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봤다면, 그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전제를 통해 각종 경제 현상을 해석하려고 애썼습니다. 1979년 손실 회피를 주제로 쓴 논문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을 발표한 후부터 줄곧 행동경제학 연구에 매진한 그는 이를 집대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심리학자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습니다.

 

그가 노벨상을 받을 때만 해도 ‘다른 경제학자가 잘 연구하지 않는 틈새 분야를 개척해 노벨상을 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전대미문의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월가 경영진이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행동 경제학과 카너먼 교수의 위상은 더 높아졌습니다. 게다가 행동 경제학 분야의 대가인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 예일대 교수가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면서 행동 경제학이 경제학의 전면에 당당히 등장했습니다.

 

 

앵커링 효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다


많은 기업은 기준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360도 달라지는 소비자의 행동 특성을 고려해 앵커링 효과를 이용한 다양한 마케팅을 구사합니다. 우선 명품업체들이 백화점 매장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3,000만 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을 진열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때 명품업체의 진짜 속내는 소비자로 하여금 3,000만 원짜리 가방을 사도록 하는 게 아닙니다. 3,000만 원이라는 비싼 기준점을 제시한 후 소비자로 하여금 ‘아! 저렇게 비싼 가방도 있는데 10분의 1 가격인 300만 원짜리 루이뷔통이나 프라다 가방은 별로 비싸지 않아.’라고 착각하게 만든 후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진짜 목적입니다.

 

아이폰으로 전 세계인을 열광시킨 애플도 기준점 효과를 잘 이용한 대표적 기업입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출시했을 때 당시 가격은 599달러였는데요, 애플은 몇 달 만에 곧바로 399달러로 가격을 인하했고 아이폰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600달러라는 기준점을 지닌 소비자들에게 ‘200달러 할인은 횡재’라는 심리적 자극을 가해 기준점 효과를 극대화한 겁니다. 유행이 지난 옷을 폭탄 세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소비자 가격을 15만 원이라고 써놓고 7만원에 팔면 훨씬 많은 구매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원래 가격이 높으면 할인 폭이 더 커지는 듯 보여 사람들의 충동구매를 자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기준점 효과는 비즈니스 협상에도 널리 쓰이는데요, 즉 가격을 두고 거래 상대방과 협상할 때는 먼저 말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가격을 조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저 등장한 협상 가격이 서로의 머릿속에 기준점으로 남기 때문이죠. 일례로 기업 A를 인수하고 싶어 하는 기업 B가 있습니다. 회계법인 및 컨설팅 회사가 산정한 적정 인수 가격은 100억 원이지만 워낙 알짜인 회사라 내심 120억 원까지 마음에 둔 상태입니다. 두 회사의 대표단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습니다. A 측 대표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200억 원이 아니면 절대 회사를 넘길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이때부터 마라톤 협상에 돌입합니다. 한 달간의 줄다리기 끝에 양측은 150억 원에 합의를 봅니다. 적정 가격보다 50억 원 비싸고, 기업 A가 처음 생각했던 120억 원보다도 30억 원이 많지만 왜 기업 B는 이 가격에 합의했을까요? A가 부른 200억 원에 기준점이 맞춰진데다 한 기업의 적정가치를 일반 공산품처럼 딱 부러지게 가격을 매길 수 없으므로 ‘일단 상대방이 주장한 200억 원에서 50억 원이나 깎았고, 고로 나는 손해 보지 않았다’는 심리가 작동한 겁니다.

 

 

삶의 곳곳을 파고든 앵커링 효과


앵커링 효과는 단순히 상품 마케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사회활동과 일상생활에 광범위하게 또 지속해서 영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독일 심리학자 프리츠 스트랙(Frits Strack)과 토머스 무스바일러(Thomas Mussweiler)가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살펴볼까요? 이들은 2006년 기자들을 시켜 강간범 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쉬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 '형량이 3년 이하냐 혹은 1년 이하냐'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놀랍게도 판사들의 형량 선고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형량이 3년 이하냐'라는 질문을 받은 판사들은 평균 3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 반면 ‘1년 이하냐'는 질문을 받은 판사들은 평균 25개월의 징역형을 내린 것입니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다소 부족해 보이는 ‘1년 이하의 형량’을 언급하는 자체가 판사들로 하여금 평소보다 낮은 형량을 구형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일을 강요하지 않고 ‘팔꿈치로 살짝 찌르는(넛지•Nudge)’ 방식으로 개입하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으면 무의식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인간의 특성을 역으로 이용한 방법입니다.

 

크리스토퍼 시(Christopher Hsee)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전화번호 실험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전화번호 중 뒤의 세 자리를 적게 한 후 '로마제국의 멸망 연도는 언제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대부분 자신의 전화번호와 굉장히 유사한 숫자를 적어 냈습니다. 질문을 듣기 전 먼저 적어낸 자신의 전화번호가 기준점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까요?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로마의 멸망연도에 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자신이 의지할 정보가 없으면 이 실험에서처럼 전혀 상관없는 정보, 하지만 자신이 잘 알고 매우 익숙한 정보를 무의식중에 꺼내고 맙니다. 이처럼 기준 설정에 사용할 정보가 부족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을 때 인간이 사용하는 어림짐작을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합니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이러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다.’ 기준점 효과에 따른 의사결정 변화를 고려할 때 인간의 본성을 이렇게 잘 묘사한 문구는 없을 듯합니다. 타인이 제시한 기준점에 쉽게 동조하고, 그 기준점이 자신의 선택에서 나온 것이라고 착각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결국, 한 기업의 흥망성쇠는 소비자에게 앵커링 효과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구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Writer.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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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융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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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일상입니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림은 흔히 일어나는 일상입니다. 하지만 기다림을 즐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급한 일이 없어도 기다림은 그저 지루하고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시간이죠. 

대기 시간이 길어지거나 그로 인해 고객의 불만이 생기면 기업 입장에서는 낭비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다른 식당을 찾아 떠날 수 있습니다. 공장에서는 생산공정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기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단순히 고객의 불편을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기업의 운영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대기 시간을 분석하고 관리하기 위한 시도들이 생겨났습니다.



대기 시간 어떻게 줄일까? 

‘대기 이론(Queueing Theory)’은 대기 시간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이론으로, 확률을 기반으로 하는 수학적 이론입니다. 고객의 기다림을 관리하고자 대기자 수와 대기 시간, 서비스 시설 현황 등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이를 이용하면 마트에 계산대를 몇 대 도입할지, 고속도로에 톨게이트를 몇 개 설치할지, 매장의 직원을 몇 명 고용할지, 줄을 어떤 형태로 만들지 등 상황에 따른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1909년 코펜하겐에서 A.K.얼랑이 전화기의 통화율을 높이기 위해 시작된 대기이론은 현재 경영관리, 공공 서비스, 엔지니어링, 교통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콜 센터 분석에도 응용되고 있습니다. 

대기 이론처럼 수학적으로 기다림을 관리하는 방법 외에도 기다림을 심리적으로 관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리적인 대기 시간을 줄이기 힘들 경우, 심리적인 방법을 이용해 대기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줄은 한 줄로 서는 것이 공평합니다. 먼저 온 순서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줄이 너무 길면 고객들은 아예 줄 서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줄 서는 일이 빈번한 놀이공원이나 대규모 공연장 같은 곳에서는 줄을 오밀조밀하게 미로형으로 만들어 줄이 길어 보이지 않게 하고, 발을 자주 옮겨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들도록 합니다. 실제 대기 시간은 똑같지만 심리적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였던 데이비드 마이스터(David Maister)는 심리적인 대기 시간을 관리하는 8가지 포인트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심리적인 대기 시간을 관리하는 8가지 포인트
1. 대기 중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뭔가를 하고 있는 경우보다 대기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집니다.
2. 구매 전에 대기하고 있으면, 주문한 후 상품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보다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집니다.
3. 어떤 이유에서든 근심을 하고 있으면 대기 시간은 더욱 길게 느껴집니다.
4. 언제 서비스를 받을지 모른 채 무턱대고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고 기다리는 것보다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집니다.
5. 서비스가 지연되는 원인이 설명되지 않은 채 기다리면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집니다.
6. 자신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서비스를 받는 경우처럼, 불공정한 상황에서 기다리면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집니다.
7. 자신이 받을 서비스의 가치가 더 있을수록 사람들은 더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습니다.
8. 혼자 기다리면, 더 길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의 안쪽에는 일반적으로 거울이 달려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엘리베이터에 굳이 거울이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엘리베이터의 역할은 사람들을 원하는 층에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시켜주는 것이니까요. 엘리베이터의 거울은 바로 대기 시간을 관리하는 8가지 포인트 중 첫 번째 포인트를 이용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보다 거울을 보면서 기다리면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죠. 커피숍에서 진동벨로 손님에게 주문한 커피가 나온 것을 알려주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 손님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도록 해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많은 식당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식당에 손님이 많아 기다려야 할 상황이면 종업원이 줄을 서 있는 손님에게 미리 주문을 받습니다. 그러면 손님은 기다리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고 식당은 이미 주문을 받았기 때문에 고객의 이탈을 막을 수 있습니다. 

네 번째 포인트는 버스정류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데요, 몇 번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를 보여주는 버스정류장 전광판을 한 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콜 센터에서도 몇 분을 기다려야 상담원과 통화가 가능한지 알려줌으로써 고객이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불편을 줄여주고 있습니다. 

은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번호표 시스템은 자기 순서가 올 때까지 자유롭게 해주어 기다림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여섯 번째 포인트처럼 불공정한 상황을 줄이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번호 순서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온 사람보다 앞서 서비스를 받을 일이 줄어드는 것이죠. 

여덟 번째 경우는 말동무를 만들어 주면 됩니다. 테마파크에서 긴 줄을 서 있을 때 캐릭터들이 와서 말을 건네곤 하는데 바로 이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오감을 이용해 기다림을 관리한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해 대기 고객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우선 시각적 측면을 보면, 차가운 색은 따뜻한 색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따라서 고객이 대기하는 공간을 차가운 색으로 꾸미면 심리적인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데요, 은행에서 고객이 3분 이상 기다리면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을 발견하고, 재미있는 동영상을 제공함으로써 기다리는 고객들의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는 것이죠. 대기 시간을 관리하는 것만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1인당 1.4달러의 매출 증대 효과를 보았습니다. 

후각적 측면을 보면 대기 고객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병원에 가면 소독약 냄새 때문에 괜히 불안감이 증폭되는데 어떤 병원들은 라벤더, 레몬, 허브, 커피 같은 향기를 분사시켜 환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각적 측면을 살펴보죠. 어떤 레스토랑은 웨이팅 푸드(Waiting food) 전략을 쓰기도 합니다. 대기 손님에게 음료나 쿠키, 애피타이저 같은 약간의 요기거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단, 웨이팅 푸드를 너무 많이 제공하면 메인 식사의 만족도를 줄일 수 있으니 음식 양과 질에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고객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무언가를 하기에 애매한 시간입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대기 고객 관리 시스템이 없다면 고객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지루함을 달랩니다. 자기 차례가 오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장소를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죠. 그러나 이 애매한 시간이 기업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불만을 줄이는 노력도 좋지만 이 애매한 시간을 고객에게 더 다가가고 고객과 더 소통하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Writer.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이사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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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융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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