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의 법칙' (1건)

 

룰렛은 프랑스어로 ‘작은 바퀴’란 뜻을 가진 카지노 게임입니다. 숫자가 적힌 바퀴를 돌린 후 그 반대 방향으로 구슬을 굴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구슬이 멎는 숫자에 따라 건 돈을 잃거나 몇 배를 따는 도박입니다. 예컨대 빨강과 검정 중 검정에 걸었는데 구슬이 검정에 표시된 숫자에서 멎는다면 건 돈의 두 배를 받게 되죠. 만약 특정 숫자에 걸었다가 이기면 건 돈의 36배를 받고, 35배의 이익이 남습니다. 가장 ‘소심한’ 배팅은 짝수나 홀수에, 또는 검정과 빨강 중 거는 것입니다. 당첨확률이 대략 50%는 되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소심하게 배팅하는 사람만 존재한다면 카지노는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0’과 ‘00’입니다. 규정상 짝수나 홀수, 검은색이나 빨간색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0과 00 중 하나에라도 구슬이 들어가면, 그 숫자에 돈을 건 사람은 36배로 돌려받지만 나머지 칩들은 카지노 측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위험추구의 대명사인 카지노 게임과 위험회피의 간판 격인 보험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카지노와 보험회사 모두 ‘대수(大數)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에 바탕을 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다다익선(多多益善) 논리로 탄생한 보험


특정 이벤트의 발생 확률이, 적은 횟수로 측정했을 땐 뚜렷이 나타나지 않지만 측정 횟수를 크게 늘리면 뚜렷이 발생하는 현상을 대수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룰렛을 38번 돌렸을 때 0이나 00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365일 밤낮없이 돌리다 보면 이론적 확률인 1/38의 가능성으로 0이나 00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보험업 역시 대수의 법칙 없이는 존재하기 어려운 산업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년 동안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아주 많은 사람의 사례를 모아놓고 보면 전체적인 교통사고 건수나 피해 액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후자의 상황에서 보험회사는 어느 정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수준으로 보험료를 책정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는 사고가 난 보험가입자에게 받은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때도 있지만, 사고 없는 가입자가 더 많을 수 있기에 손해가 희석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논리라면 보험가입자가 많은 큰 보험회사일수록 사업을 유리하게 영위할 수 있는데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면 더 안정적으로 지출금액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신생 보험회사는 보험가입자를 어느 정도 확보할 때까지 고전을 면치 못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혹시라도 독과점이 생긴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죠? 이에 정부는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와 같은 특정 기관을 통해 사망, 질병, 사고 등의 통계를 수집하고 보험회사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 대수의 법칙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개념이 위험 분산(Risk Pooling)입니다. 위험 분산이란 수많은 개별적 위험을 한 곳에 모아 집단 전체의 위험을 줄이는 행위입니다. 다시 보험의 예로 돌아가면,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개인들이 보험회사에 주는 이익(+)이나 손해(-)는 천차만별이지만, 개인을 많이 모으면 들쭉날쭉한 이익과 손해가 상쇄되어 보험회사의 손익이 안정화되는 것이죠.

 

대형 연예기획사의 안정적 성장도 위험 분산 덕분입니다. 소속 연예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예기획사의 수입은 꾸준히 늘어나게 됩니다. 연예인 개인의 수입은 불안정할지 몰라도 대형 연예기획사의 수입은 그렇지 않죠. 더구나 유명 연예인을 통해 거둔 수입 덕분에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많은 신인에게 동시 투자할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위험을 분산하는 셈입니다.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지향하는 바도 결국은 가맹점 수를 늘려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입니다. 간혹 프랜차이즈 본사가 너무 좁은 지역 안에 여러 개의 지점을 열도록 하는 등 개별 점포의 수익은 고려하지 않는 듯한 일을 벌이기도 하는데요, 이런 일은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일이긴 하나 전체 수익과 가맹점 확대를 통한 위험 분산이 중요한 본사로서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맹점주는 첫 계약 단계에서 세부적인 조건들을 따져둬야 합니다.

 

 

금융위기, 대수의 법칙의 그림자  

 

위험 분산을 바탕으로 한 금융상품 역시 많습니다. 2008년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 주택 담보부채권(MBS∙Mortgage-Backed Securities)도 그 중 하나인데요, 주택 담보부채권이란 주로 미국 은행이 갖고 있는 수많은 주택담보대출(Mortgage)을 한데 모아 빚에 대한 증서인 채권(Securities)으로 만든 것을 뜻합니다. 주택 담보부채권을 매입하면 그 채권에 포함된 많은 주택담보대출 건으로부터 걷힌 이자를 나눠 받게 됩니다. 개별 주택담보대출은 돈을 빌린 개인 채무자가 중간에 더 이상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 채권자가 모든 위험을 떠맡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나 수많은 주택담보대출 건수를 한데 묶은 주택 담보부채권은 소수의 대출자가 이자지급 불능 사태에 빠지더라도 나머지 다수가 손실분을 상쇄해 큰 문제 없이 안정적으로 이자를 모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대수의 법칙에 근거한 위험 분산 기능이 금융 소비자의 과신을 불러일으킨 나머지 주택 담보부채권이 매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주택 담보부채권이 잘 팔리다 보니 은행들이 주택을 담보로 더 많은 대출을 하게 됐고, 사람들은 집을 사는 데 빚을 쉽게 얻게 돼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것입니다. 결국 부동산 거품은 꺼지고 대형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초래돼 세계 금융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메가펀드, 대수의 법칙의 빛이 될 수 있을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대수의 법칙에 근거한 위험 분산 기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한 예로 경제학자이자 헤지펀드 매니저인 앤드류 로(Andrew Lo)는 2012년 이른바 ‘메가펀드(Mega-sized Fund)’의 개념을 제안했는데요, 이 또한 대수의 법칙 이론에 근거합니다. 작은 펀드가 여러 개 있으면 실패 프로젝트에만 펀드가 투입돼 전반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지만,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다룰 수 있는 메가펀드는 성공 프로젝트가 확실하게 편입되어, 실패 프로젝트의 손실을 보완하고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앤드류 로는 주택 담보부채권과 비슷한 연구 담보부채권(Research-Backed Obligations)을 제안했는데요, 대규모의 자본을 모아 초기 단계의 암 치료약 개발 여러 건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수백억 달러 정도의 규모가 돼야 여러 연구를 한꺼번에 지원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초 제안은 암 치료에 관한 것이었지만, 사실 이러한 발상은 위험 부담이 큰 연구 프로젝트나 벤처 지원 등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금융위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적으로 자본을 동원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겠지만, 한 번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이 아니라도 혁신적인 창업이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지향점이 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으니 말입니다.

 

 


 

 Writer. 민세진
동국대학교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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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융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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